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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운 게 어딨어

boky 2018. 2. 22. 15:07

여자다운 게 어딨어

Girls will be girls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

에머 오툴 Emer O'toole

창비


  "행위주체를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환경이 비슷해도 아주 다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나이기 운동화를 훔친 10대 소녀의 언니는 살면서 도둑질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는 미친 듯이 공부해서 불리함을 딛고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분별 있는 사라이라면 그가 산 멋진 차와 근사한 집이 행위주체가 아니라 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을 키우기 위해 대단히 노력한다. 구조에 초점을 맞추면 통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의 경험을 간과할 수 있는데, 이들의 경험 역시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구조에 초점을 맞추면 개인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단연코 나는 아니다). 그들은 수당을 받는 씽글맘의 배경에 집중하는 것은 씽글맘 본인이 출산이나 취업 전망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내 생각에는 '책임을 지는 것' 자체가 명백히 누군가에게는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 논리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때 구조와 행위주체 둘 다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맹목적인 광신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인정한다. 행위주체에만 초점을 맞추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 구조에만 초점을 맞추면 규칙의 예외를 보지 못한다."


  "벨 훅스는 '행복한 페미니즘'에서 여성은 자신의 성차별적 사고를 자각하고, 성,인종,계급을 근거로 한 여성들 간의 억압을 직면한 뒤에야 다른 여성과 연대하여 불평등에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는 나자신의 성차별적 편견을 경험한 뒤 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른 편견들에 대한 자각이 이어졌다."


  "젠더를 다른게 연기하는 데에는 급진적 잠재력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연기로써 젠더 수행이 '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창의성과 임의성 전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스키마에 공을 튀기고, 젠더 렌즈에 그래피티를 그릴 수 있다. 일단 맛을 들이고 나면 일상의 각본을 다시 쓴다는 것이 전만큼 힘겹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은 점차 연기를 '실제'의 영역으로 넘겨 줄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에서,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다른 것처럼 연기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로써 당신은 다른 사람들도 새로운 젠더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세ㅖ, 우리가 여성과 남성이기 이전에 인간이 세계를 창조하게 된다."


  "포스트모던 시대 페미니스트의 임무는 견고해 보이는 모든 범주를 발가벗겨 그 두서없는 구성을 드러내고, 범주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마그릿 실드릭, 재닛 프라이스"


  "옆머리와 뒷머리를 짧게 자른 것만으로 이런 변화가 일어나다니 놀랍지 않은가? 한번은 스틸레토 킬힐을 신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삐죽삐죽 세운 채 가족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 내가 댄스플로어를 누비는 것을 보고 한 남자가 우리 오빠에게 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여자 보여? 아주 매력적이기 ㄴ한데, 내 거시기를 잘라버릴 것처럼 생겼어. 불쌍한 로넌 오빠는 '내 여동생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떤 목소리였을지 상상도 못하겠다."


  "우선 재우 없는 페미니스트들의 전형적인 차림새에 걸맞은 의상을 이비는 것은 젠더 렌즈를 깨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문제는 상징이 아니라 그 상징들이 나타내는 바다. 긴 머리는 수동성을 의미하지 않아야 하고, 짧은 머리는 공격성을 의미하지 않아야 한다. 화장한 얼굴을 깨끗이 면도한 턱이나 깔끔하게 정리한 수염과 마찬가지로 경박함을 의미하지 않아야 한다. 문제는 치마나 스틸레토 같은 여성성의 상징들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의 성차별적 문화에서 여성성의 상징에 결부되는 의미들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상징을 조작하는 것일 테다. 상징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고, 뒤섞어보는 것. 젠더와 결부된 일상 속의 상징들을 조작하는 것은 한번의 공연이나 단순하 픽션 이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여성과 남성의 특성과 그들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고성관념들을 뒤흔듦으로써 현실과 표상 사이의 선을 흐리게 하는 전략이다."


  "그러니 파티에 가서 젠더를 살짝 비틀어보자. 남성용 디로도런트를 부리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남자 냄새가 아니라 자기 냄새처럼 느껴질 것이다. 전화를 받을 때 목소리를 낮추고, 사람들이 평소와 다르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자. 그러다가 목소리를 갑자기몇톤 높어보자. 상대의 반응이 어떤가? 남성용 속옷을 입어보자. 반대로 남자에게 자신의 속옷을 입혀보자. 베이스 음역대를 맡아 불러보자. 흑맥주를 시키자. 그다음 주문은 섹스온더비치가 좋겠다. 한쪽 손은 손톱을 길게 길러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른 손은 짧게 깎고 밋밋한 손톱을 유지하자(기타리스트라면 모름지기 이런 손을 지녀야 한다). 남자들에게 문을 열어주자. 저녁식사 후에 친구들이 코트 입는 것을 도와주자. 자전거 타이어 가는 법과 컵케이크 굽는 법을 동시에 배우자. 선반 설치나 뜨개질은 두 다 남에게 시키자. 남자친구가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른 사이에 계산을 해버리자. 세계를 놀라게 하자. 자신을 놀라게 하자."


  "신체적 성의 모호성이 우리 문화에서 이처럼 극렬하게 삭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다양한 남성적, 여성적 특성을 지니는데다 간성까지 존재하니 성을 스펙트럼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성을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이 불평등한 우리 사회 내에서 신체의 차이가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성을 인정하고, 생물학적 성이 이분법이 아닌 스펙트럼임을 인정하고, 젠더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런 합리화는 힘을 잃는다. 이는 곧 남녀 사이의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아름다움의 미신에 도전하는 것은 이론상 가슴 열광증에 딴죽을 거는 것보다 쉬워야 한다. 민낯으로 현관문을 나선다고 해서 누가 '피부 좋은데, 아주 섹시해!'라고 외치진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상적 여성성에 부합하도록 자신의 의상을 고르고 행동하는 데에는 즐거움이 있다. 심지어는 권혁도 따른다. 행위주체에 초점을 맞추면, 매력적이 되고자 하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은 전적으로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행위주체에서 한걸음 물러나 구조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가 이상적인 미에 순응하는 것이 남녀의 차이를 과장하고, 성과 젠더의 스펙트럼을 숨기고, 우리의 몸과 행동이 감시되고 통제되도록 호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도 또한 합리적이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함으로써 미용산업이 여성들을 점점 더 심하게 착취하도록 방조하고 있다. 미용사업가들은 점점 더 강력하고 파급력 있는 제품을 갈수록 어린 나이의 소녀들에게 판매해서, 나난 당신 같은 보통의 여자마저 자신감을 얻기 위해 성형수술을 해야 한다고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페미니즘은 패션이나 몸의 변화에 반대하지 않지만 미용산업에, 그리고 미용산업과 여성들의 관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래야만 한다. 우리가 의상을 고르고 스스로를 부호화하는 방식을 곱씹어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숙할 때마다 나는 내 몸을 강제로 규범에 순응시키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억압적인 여성적 아름다움의 이상을 강화하고 이분법적 젠더 체계를 공고히 하는 패션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다음 과제는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에서 패션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적 기준이 아름다움의 성격을 불가항력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미용업계와 패션으로 돌아가 지속적인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우리 몸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아름답고 혁명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각양각색일 거라고 상상한다. 페미니즘은 패션처럼 선택의 문제여야 한다. 서문에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윤리학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사고하는 존재로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인지 고민해야 하지만, 그 답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 우리는 젠더 딱지가 붙은 의상과 공연의 상징들, 우리가 강화하고 있는 여성적 행동에 대한 믿음들을 고민한 끝에 각자 아름다움으로 가는 최선의 길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젠더에 특화된 미용관습에 대해 아무리 숙고해보아도 이것이 개인적 선택으로 하는 일인지 강압에 의해 하는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잠시 동안 다른 연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안전하고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패션 및 몸치장과 당신이 맺고 있는 감정적, 심리적 관계를 탐구해보자. 자신감을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누구도 당신에게 팔 수 없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이라는 브랜드를 즐겨보자."


  "2013년 여름, 나는 마침내 내가 바라던 단계에 다다랐다. 처음에는 다르를 드러낼 때면 조금이라도 남들의 시선을 덜 받도록 남성적인 옷차림을 했으나, 여기에 다른 옷들을 점차 섞어 입다보니 매일 입고 싶은 것을 모엇이든 입으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대규모 국제 연극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많은 업계 인맥들 사이에서 예쁜 윈피스에 초록색 위지힐을 신고 다리와 겨드랑이를 흔들어댔다. 친구들과 브라이턴 해변에 놀러 가서는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했다. 짧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너무나 행복했다 - 내가 해낸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는 이제 내가 유해하다고 믿는 젠더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도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자신감을 느꼈다. 마치 내 몸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면도를 하거나 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는 지점에 놓여 있다. 꼭 한쪽으로 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털을 기르는 편이 더 편안하다. 이 단계에 오기까지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러나 배운 것도 많았다. 나는 아비뛰스에 지속성이 있긴 하지만, 듀라셀 토끼들조차도 계속해서 작은북을 치게 만들면 지쳐서 나가떨어진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체모를 드러낸 채로 콘퍼런스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자랑스럽다. 아니, 사실은 이 모든 게 바보 같다. 그깔 털이 뭐라고."


  "무죄를 주장하려는 걱은 아니지만, 이런 언어 용법은 모두 외부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이성애자처럼 보이는 비장애인 백인으로서 나는 나의 언어가 어디서 왔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물론 나의 언어는 흑인, 성소수자,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왔으며 , 차별을 정상으로 간주하게 하는 수행적 효과를 발휘한다."

  "나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고 믿는다. 한때 복수대명사였던 'they'는 복수와 단수 대명사로 사용되며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they'는 남성 대명사가 모든 인류를 대표할 수 없을 뿐더러 한 사람이 성별을 근거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우리 사회가, 성별화되지 않은 3인칭 대명사를 필요로 하면서 등장했다.
'they'는 젠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 내에서 유기적으로 발생한 해법이다. 그러나 이 선물은 아직 태아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아직 우리는 대부분의 대화에서 언급라는 사람의 성별을 특정한다. 그런데 말이 곧 행동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성별화된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행동인지를 고민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he'나 'she'를 입에 올릴 때마다 사회의 젠더 이분법이 강화되는 건 아닐까? 우리가 대사를 다시 쓸 수 있을까?"

  "언어를 변화시키면 가능성과 자유가 태어난다. 차별적인 세계관이 더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예컨대 이사장을 'they'라고 칭하면, 현실적으로 남자가 그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더 높긴 해도, 이사장이 여성일 수 있난 언어적 공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내가 돌보는 어린아이를 'they'라고 칭하면 그 아이에게는 어린 나이부터 기대되는 성역할 바깥에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내가 데이트하는 사람을 'they'라고 칭하면 사람들은 더이상 내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추측할 수 없을 것이고, 성소수자들에게는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 (이성애자가 자신의 연애생활에 대해 이런 어법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대단한 연대의 행위로 비쳐질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성해부학은,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여성의 성적 쾌락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성파별적 관점 - 여성의 쾌락을 죄스럽고 하찮고 남성의 쾌락에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관점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코넬과 뷔송과 폴데가 입를 모아 말하듯 클리토리스를 둘러싼 무지는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니라, 여성의 몸을 타고나 여성의 경험을 겪는 사람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회의 산물이다. 앞서 밝혔듯 내게 포르노나 포르노 이용자들을 악으로 규정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포르노가 이런 사회의 산물이고 우리의 성적 욕구, 취향, 행동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Orientation Police

  "아름다움이라는 미신에서 숭배받는 여신이 되려는 노력을 멈춘 뒤로, 나는 내 몸을 이용해 정치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느낌응 좋아하게 됐다. 하루는 여성스러운 외양으로 다음 날은 남성스러운 외양으로 출근하면서, 나는 젠더가 의상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남성적이든 여성적이듴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요구한다. 털이 난 다리를 내보임으로써 나는 여성의 체모만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성차별적이라고 말한다. 삭발한 머리로써 나는 이것이 어째서 여자가 아닌 남자만의 헤어스타일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월요일에 화당을 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내 얼굴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화요일에 화장을 함으로써 나는 내 얼굴을 꾸미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입는 의상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해하며, 그것이 해석되는 방식까지는 통제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전하고자 하는 젠더와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시도한다."

  "자신이 마음속으로 깊이 믿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 단지 그렇게 길들여졌다는 이유만으로 - 우리는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느낄 유일한 행복은 우리가 존중하지 않는 체제 내에서 보상을 받거나 징벌을 피하는 것뿐이다. 이건 마치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그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사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똑같이 가치있게 평가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 사회 내에서 남녀 간의 문화적 구분이 임의적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두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성역할 바깥에서 행동할 진짜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여자들이 여자가 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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